Studio d’Essai
Studio d’Essai와 1940년대 프랑스의 새로운 음향 실험
Studio d’Essai는 1940년대 프랑스 라디오를 기반으로 형성된 실험적 방송·음향 제작 스튜디오로, 훗날 피에르 셰페르(Pierre Schaeffer)의 musique concrète(구체음악)와 프랑스 전자음악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제도적 기반이 되었다. 1942년은 독일 점령기의 프랑스였으며, Studio d’Essai는 처음부터 전자음악만을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라기보다 라디오라는 새로운 매체를 이용하여 방송극, 음향효과, 음성, 음악, 녹음 및 재생기술 등을 실험하는 공간에 가까웠다.
엔지니어 출신이었던 셰페르에게 녹음기술은 음악에 대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고를 가능하게 하였다. 전통적인 서양음악에서는 대체로 작곡가 → 악보 → 연주자 → 소리라는 과정을 통해 작품이 실현되었다. 그러나 녹음기술의 발전은 현실에 존재하는 소리 → 녹음 → 편집과 변형 → 작품이라는 새로운 과정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에 따라 소리는 악보에 기보되기 이전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작곡의 직접적인 재료가 될 수 있었다.
전쟁 이후 셰페르는 이러한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탐구하였다. 1948년의 《Étude aux chemins de fer》에서는 기차의 엔진, 바퀴, 레일 등의 실제 소리를 녹음하고 이를 반복·편집하여 음악적 구조를 만들었다. 이러한 작업은 musique concrète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여기서 concrète란 건축재료인 콘크리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악보에서 출발하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구체적인 소리 자체에서 출발한다는 의미이다. 이후 셰페르와 피에르 앙리(Pierre Henry)의 작업을 거쳐 이러한 흐름은 Groupe de Recherches de Musique Concrète와 이후의 GRM(Groupe de Recherches Musicales)으로 발전하였다.
Studio d’Essai는 불레즈의 1940년대 음악적 환경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당시 파리에서는 서로 다른 방향의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었다. 옹드 마르트노(Ondes Martenot)는 전자적으로 생성되는 새로운 음색을, 비슈네그라드스키(Ivan Wyschnegradsky)는 4분음과 미분음을, 메시앙은 새로운 리듬과 음색 및 비서구 음악을, 이베트 그리모와 마디 소바조는 민족음악학과 비서구 음악의 음향자료를, 셰페르와 Studio d’Essai는 녹음기술과 ‘소리 자체’를 작곡 재료로 사용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는 ‘음악이란 서양 악기로 악보에 기록된 음을 연주하는 것’이라는 기존의 개념이 여러 방향에서 확장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불레즈는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을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는 1950년대 초 셰페르의 musique concrète와 직접 접촉하였지만, 현실에서 채집한 소리를 경험적으로 선택하고 조합하는 방식에 점차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불레즈에게 새로운 음향재료 역시 작곡적 사고를 통해 구조적으로 조직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불레즈와 셰페르 사이의 차이는 새로운 음향기술을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음향을 어떠한 작곡 원리에 따라 조직할 것인가의 문제에 있었다.
이러한 갈등은 불레즈와 존 케이지 사이에서 나타난 차이와도 연결된다. 케이지와의 관계에서 핵심적인 문제가 우연(chance)과 통제(control)였다면, 셰페르와의 관계에서는 발견되고 채집된 구체적 소리와 체계적으로 조직된 음악적 구조 사이의 긴장이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두 경우 모두 불레즈가 지속적으로 제기한 질문은 결국 동일하였다. 즉 새로운 음악적 재료를 발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그 재료를 조직하는 새로운 작곡적 논리가 함께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이다.
따라서 Studio d’Essai는 불레즈가 성장하던 1940년대 파리에서 ‘음악적 재료’와 ‘소리’의 개념 자체가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배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젊은 불레즈는 옹드 마르트노, 미분음, 비서구 음악, 녹음음향과 musique concrète 등 당대의 새로운 가능성을 폭넓게 경험하였지만, 이후 이를 자신의 핵심적인 작곡적 문제, 즉 음악적 재료를 어떻게 일관된 구조로 조직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선택적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