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A GRM vs IRCAM

INA GRM과 IRCAM: 프랑스 전자음악의 두 계보

INA GRM과 IRCAM은 모두 프랑스 전자음악과 음향 연구의 중심 기관이지만, 역사적 출발점과 음악을 바라보는 방법론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를 가장 간단하게 구분하면 피에르 셰페르(Pierre Schaeffer)의 GRM은 ‘소리를 발견하고 듣는 것’에서 출발한 반면,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의 IRCAM은 ‘소리를 분석하고 설계하는 것’에서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다.

1. Schaeffer와 GRM: 소리를 발견하고 듣는 것

GRM의 역사적 기원은 1940년대 프랑스 라디오의 Studio d’Essai와 피에르 셰페르의 음향 실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셰페르는 녹음기술을 통해 현실에 이미 존재하는 소리를 원래의 발생원으로부터 분리하여 하나의 독립적인 음악적 대상으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사고는 1948년 musique concrète(구체음악)로 발전하였다. 기차, 기계, 목소리, 타악기 등의 현실적인 소리를 녹음한 뒤 이를 반복하고 절단하고 속도를 변화시키거나 역재생함으로써 새로운 음악적 구조를 만들어내는 방식이었다.

셰페르에게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는 objet sonore(sound object, 소리 객체)였다. 소리가 무엇에 의해 발생했는가보다 그 소리 자체가 어떠한 음향적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가 중요하였다.

따라서 GRM으로 이어지는 초기의 방법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현실의 소리 → 녹음 → 청취 → 분류와 변형 → 음악적 구성

이러한 전통은 Studio d’Essai → musique concrète → GRM → INA GRM으로 이어졌다.

2. Boulez와 IRCAM: 소리를 분석하고 설계하는 것

불레즈의 접근은 셰페르와 달랐다. 그는 1950년대 초 musique concrète의 실험에 직접 관여하면서도, 이미 존재하는 소리를 채집하여 경험적으로 조합하는 방식만으로는 충분한 작곡적 통제와 구조적 일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였다.

불레즈에게 전자음향 역시 단순히 새롭거나 흥미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수단이 아니라 작곡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재료여야 했다.

1970년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은 불레즈에게 음악과 음향 연구를 위한 새로운 기관의 구상을 요청하였다. 이를 계기로 설립된 IRCAM(Institut de Recherche et Coordination Acoustique/Musique)은 1977년 파리의 Centre Pompidou와 함께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IRCAM에서는 작곡가뿐 아니라 음향학자, 수학자, 컴퓨터 과학자, 엔지니어와 연주자가 협업하였다. 컴퓨터를 이용하여 악기음을 분석하고, 음향의 내부 구조를 모델링하며, 새로운 음색을 합성하거나 실제 연주자의 소리를 실시간으로 변형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IRCAM의 기본적인 방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음향 분석 → 수학적·컴퓨터 모델 → 합성과 변형 → 작곡 → 연주

GRM이 이미 존재하는 소리를 하나의 ‘객체’로 발견하고 청취하는 데서 출발하였다면, IRCAM에서는 어떠한 소리를 원하는가, 그리고 그 소리를 어떻게 구조적으로 만들어내고 제어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중요해졌다.

3. Sound Object와 Composable Structure

GRM과 IRCAM의 차이는 단순히 서로 다른 전자음악 기술을 사용했다는 데 있지 않다. 두 기관은 ‘소리’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작곡적 사고를 대표한다.

셰페르에게 소리는 우선 발견하고 청취해야 하는 대상(sound as object)이었다. 녹음기술은 현실의 소리를 그 발생원에서 분리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들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반면 불레즈에게 소리는 점차 구성하고 조직할 수 있는 구조(sound as composable structure)가 되었다. 음고뿐 아니라 음색, 지속시간, 공간적 위치와 음향의 변화 과정까지 작곡의 대상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따라서 두 계보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Schaeffer / GRMBoulez / IRCAM역사적 출발1940년대 Studio d’Essai1970년대 IRCAM핵심 매체녹음된 소리컴퓨터·전자음향대표적 개념musique concrètecomputer music·live electronics출발점이미 존재하는 소리분석·설계 가능한 소리핵심 관심청취·sound object구조·분석·제어주요 방법녹음·편집·변형분석·합성·알고리즘·실시간 처리

다만 이러한 구분은 두 기관의 역사적 출발점과 초기 미학을 비교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 GRM 역시 디지털 합성과 소프트웨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IRCAM에서도 녹음된 실제 음향을 다양한 방식으로 처리한다.

4. 《Répons》와 IRCAM의 미학

불레즈의 《Répons》(1981–84)은 IRCAM의 사고방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앙상블과 여섯 명의 독주자가 연주하며, 독주자들이 만들어내는 실제 악기 소리가 컴퓨터에 의해 실시간으로 처리되고 변형되어 공연장 여러 위치의 스피커를 통해 다시 투사된다.

즉,

연주자의 실제 소리 → 실시간 컴퓨터 처리 → 음향 변형 → 공간적 재배치

라는 과정이 연주 중에 이루어진다.

여기서 전자음향은 단순한 특수효과가 아니다. 불레즈는 전자기술을 통해 음고, 음색, 시간뿐 아니라 공간 자체까지 작곡 가능한 변수로 확장하였다. 따라서 IRCAM에서 기술은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목적 자체가 아니라 작곡의 영역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기능하였다.

5. 1940년대의 경험에서 IRCAM으로

IRCAM의 탄생은 불레즈의 1970년대 활동만으로 이해하기보다 그의 1940년대 음악적 형성과 연결하여 볼 필요가 있다. 젊은 불레즈는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기존 서양음악의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음악적 재료를 경험하고 있었다.

Ondes Martenot를 통해 전자적으로 생성되는 새로운 음색과 미분음의 가능성을 경험하였고, Wyschnegradsky를 통해 기존의 12반음 체계를 넘어서는 음고 조직을 접하였다. Messiaen, Yvette Grimaud, Mady Sauvageot를 통해서는 비서구 음악의 리듬과 음색, 음고체계 및 민족음악학적 음향자료를 접하였으며, Schaeffer와 musique concrète는 녹음된 현실의 소리 자체가 작곡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불레즈가 지속적으로 제기한 문제는 새로운 재료의 발견 그 자체가 아니었다.

새로운 소리를 발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그 소리를 어떻게 작곡할 것인가?

이 질문은 불레즈의 음악적 사고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케이지와의 관계에서는 chance와 control, 셰페르와의 관계에서는 concrete sound와 organized structure의 문제로 나타났으며, 이후 컴퓨터와 전자음향 기술을 통해 보다 정교한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결론

GRM과 IRCAM은 프랑스 전자음악사의 단순한 전후 관계가 아니라 소리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가지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셰페르의 GRM이 녹음기술을 통해 소리를 원래의 발생원에서 분리하고 하나의 독립적인 청취 대상으로 발견하였다면, 불레즈의 IRCAM은 컴퓨터와 음향학을 통해 소리를 분석하고 생성하며 구조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작곡적 대상으로 확장하였다.

따라서 불레즈가 1970년대에 IRCAM을 설립한 것은 그의 초기 음악적 경험과 단절된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 1940년대부터 그가 접했던 전자악기, 미분음, 비서구 음악, 새로운 음색과 녹음음향의 가능성이 수십 년에 걸쳐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IRCAM은 새로운 소리를 발견하는 것을 넘어 그 소리를 어떻게 분석하고 조직하며 작곡할 것인가라는 불레즈의 오랜 문제의식이 제도화된 결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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