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Cas Messiaen
Messiaen, Trois petites liturgies de la Présence Divine (1943–44): 1945년 초연과 ‘Le Cas Messiaen’
메시앙의 《Trois petites liturgies de la Présence Divine》는 1943–44년에 작곡되어 1945년 4월 21일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이 작품의 초연은 해방 이후 처음 열린 Concerts de la Pléiade 연주회였으며, 청중의 반응은 상당히 열광적이었지만 언론과 비평계에서는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이 시기 《Vingt Regards sur l’Enfant-Jésus》와 《Trois petites liturgies》를 둘러싼 논쟁은 이후 ‘Le Cas Messiaen’(메시앙 사건/논쟁)이라고 불리게 된다.
1. 종교적 신비주의와 감각성의 결합
《Trois petites liturgies》는 제목 그대로 ‘신적 현존’을 다루며, 메시앙 자신이 종교적 텍스트를 썼다. 그러나 그 종교성은 전통적인 의미의 금욕적이고 절제된 교회음악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여성합창, 피아노, 옹드 마르트노, 첼레스타, 비브라폰과 각종 금속 타악기, 현악기가 결합하면서 극도로 색채적이고 감각적인 음향세계가 만들어진다.
당시 논쟁에서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종교적 신비주의(mysticism)와 감각성(sensuality)의 결합이었다. Larousse 역시 이 작품을 둘러싼 반발의 중요한 원인으로 종교적 텍스트의 관능성과, 음악에서 나타나는 감각성과 신비주의, 쾌락주의와 추상성의 이례적인 융합을 지적한다.
따라서 논쟁의 질문은 단순히 ‘이 음악이 너무 현대적인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메시앙이 신의 현존이라는 신학적 주제를 왜 이렇게 화려하고 육체적이며 감각적인 음향으로 표현하는가라는 문제가 중요했다.
2. 메시앙 자신의 텍스트와 작품 해설
메시앙은 자신의 작품에 매우 상세한 신학적·시적·음악적 해설을 붙였다. 비판자들은 음악 자체뿐 아니라 이러한 해설의 문학적 질과 음악과의 관련성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Bernard Gavoty는 Le Figaro에서 Clarendon이라는 필명으로 메시앙을 공격했다.
당시 비판의 두 가지 주요 쟁점으로 연구자들이 지적하는 것도 메시앙의 지나친 해설의 적절성과 문학적 질, 그리고 그의 음악언어 자체의 특징이다. 따라서 Le Cas Messiaen은 순수하게 작곡기법에 관한 논쟁이라기보다 메시앙이 음악·신학·문학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결합하고 그것을 직접 설명하려 했던 방식 전체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Richard D. E. Burton은 《Trois petites liturgies》의 언어 자체도 성서적 인용과 초현실주의적인 시어가 겹쳐지는 구조로 분석한다. 즉 메시앙이 사용하는 종교 언어 자체가 전통적인 전례문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Claude Rostand의 ‘립스틱을 바른 천사’
이러한 반감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Claude Rostand의 유명한 비평이다. 그는 작품을 ‘번쩍이는 장식’, ‘거짓된 장엄함’, ‘사이비 신비주의’ 등에 빗대면서 마지막에는 작품을 ‘립스틱을 바른 천사’에 비유했다.
이 비유는 당시 메시앙에 대한 비판의 성격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천사 → 신성함, 종교성
립스틱 → 인공적 화려함, 감각성, 장식성
즉 비판자들에게 메시앙의 음악은 종교적인 것을 순수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대신 지나치게 화려하고 감각적으로 ‘치장’한 음악처럼 들렸던 것이다.
3. 비서구 음악과 새로운 음향
《Trois petites liturgies》의 독특한 음향에는 메시앙이 접했던 발리 가믈란의 영향도 중요하다. 메시앙 자신이 작품의 금속 타악기군을 ‘gamelan’이라고 불렀으며, 비브라폰·금속 타악기·공 등의 음향은 그가 비서구 음악에서 받아들인 색채적 청각세계와 연결된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는
가톨릭 신비주의 → 여성합창 → 옹드 마르트노 → 금속 타악기 → 가믈란 → 리듬과 음색의 새로운 조직
이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특이한 결합이 발생한다.
불레즈에게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
이 사건은 초기 불레즈를 이해하는 데 특히 중요하다. 당시 불레즈는 메시앙의 학생이었고 《Trois petites liturgies》 초연에도 참석하여 비브라폰 연주자의 악보를 넘겨주는 작은 역할을 맡았다. 즉 그는 ‘Le Cas Messiaen’을 멀리서 접한 것이 아니라 그 현장 내부에 있었다.
그러나 이후 불레즈가 메시앙에게서 계승하게 되는 것은 반드시 메시앙의 가톨릭 신비주의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메시앙이 보여준 리듬, 음색, 타악기, 비서구 음악, 그리고 기존 서구 음악의 어법 밖에 존재하는 음악적 재료에 대한 개방성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Trois petites liturgies》의 초연 이야기가 곧바로 가믈란 → Musée de l’Homme의 음원 → André Schaeffner → 민족음악학 → 불레즈 자신의 공과 종 수집으로 이어지는 것은 중요하다. 저자는 단순히 ‘메시앙에게 이런 스캔들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앙이 열어놓은 새로운 음향세계가 젊은 불레즈에게 어떻게 전달되었는가를 추적하고 있는 것이다.
핵심
《Trois petites liturgies》 논란은 단순한 ‘현대음악 스캔들’이라기보다, <가톨릭 신비주의 + 감각적·관능적인 종교 텍스트 + 극도로 색채적인 음향 + 옹드 마르트노와 금속 타악기 + 가믈란의 영향 + 메시앙의 장황한 신학적 자기해설>이 한 작품 안에서 결합하면서 기존의 미학적 범주를 흔든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바로 곁에서 경험한 젊은 불레즈에게는 메시앙의 종교적 세계관보다도, 그가 서구 음악의 음향·리듬·악기법의 경계를 확장해 놓았다는 사실이 이후 더 중요한 유산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