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레즈와 존 케이지: 우정에서 미학적 결별까지
피에르 불레즈와 존 케이지의 관계는 전후 현대음악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곡가 교류 가운데 하나이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세대와 문화적 배경에 속해 있었지만, 1940년대 말에는 기존의 작곡 관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가까운 친구이자 지적 동료가 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 초 ‘우연(chance)’과 ‘통제(control)’에 대한 입장이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두 사람의 긴밀한 관계 역시 점차 해체되었다. 따라서 불레즈와 케이지의 관계는 단순한 개인적 우정의 문제가 아니라, 전후 아방가르드가 서로 다른 미학적 방향으로 분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1. 1949년 파리에서의 만남
불레즈와 케이지는 1949년 케이지가 유럽을 여행하며 파리에 체류하던 시기에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불레즈는 24세의 젊은 작곡가였으며, 케이지는 그보다 열두 살 많은 36세였다. 불레즈는 이미 메시앙과 르네 레이보비츠를 거치며 쇤베르크와 베베른의 음악, 12음기법과 음렬적 사고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반면 케이지는 prepared piano를 비롯하여 전통적인 서양 악기의 음향과 작곡법을 변형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급진성을 발견하였다. 불레즈는 케이지의 《Sonatas and Interludes for Prepared Piano》에 큰 관심을 보였고 파리에서 케이지의 음악을 알리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케이지 역시 미국에서 불레즈의 음악을 소개하고 그를 미국의 음악계와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들의 관계가 특별했던 것은 단순히 서로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1949년부터 1954년까지 두 사람은 집중적으로 서신을 주고받으며 자신들이 현재 작곡하고 있는 작품의 구조, 리듬과 음고의 조직, 작곡 방법론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이 서신들은 이후 《The Boulez-Cage Correspondence》로 출판되었다. 따라서 케이지는 한동안 불레즈가 자신의 새로운 작곡적 아이디어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토론할 수 있었던 중요한 지적 상대였다.
2. 두 사람이 공유했던 문제의식
불레즈와 케이지가 가까워질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두 사람이 비슷한 질문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곡가가 기존의 관습이나 개인적인 취향에 의존하지 않고 어떻게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라는 문제였다.
전통적인 작곡에서는 작곡가의 취향과 직관이 음의 선택과 형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불레즈와 케이지 모두 이러한 방식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존재하는 화성적 습관이나 선율적 취향에 의존한다면 아무리 새로운 음악을 만들려고 해도 결국 과거의 언어를 반복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사람은 모두 작곡가 개인의 습관적 선택을 제한할 수 있는 새로운 작곡 시스템을 모색하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1940년대 말의 불레즈와 케이지는 서로를 동료로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 두 사람이 결국 정확히 반대되는 답에 도달하였다.
3. 불레즈의 해답: 더욱 철저한 조직
불레즈가 선택한 방향은 작곡가의 선택을 보다 엄격한 체계 속에서 조직하는 것이었다. 쇤베르크의 12음기법과 특히 베베른의 음악에서 출발한 불레즈는 음고뿐 아니라 리듬, 음가, 강약, 아티큘레이션 등의 여러 음악적 요소를 구조적으로 조직하려 하였다. 이러한 사고는 1950년대 초 총렬주의(total serialism)로 발전하였다. 불레즈의 《Structures Ia》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불레즈에게 기존의 조성적 습관이나 작곡가 개인의 직관을 극복한다는 것은 작곡가의 통제를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더욱 엄격하게 조직함으로써 기존의 습관적 선택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불레즈의 해결책을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자의적인 선택을 없애기 위해서는 작곡을 더욱 철저하게 조직해야 한다.
4. 케이지의 해답: 선택 자체를 포기하기
케이지는 정반대의 결론으로 향하였다. 작곡가 개인의 취향이 문제라면 그것을 더 엄격한 시스템으로 통제하는 대신, 작곡가 자신이 선택하는 행위 자체를 제거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한 것이다.
1950년대 초 케이지는 《I Ching》을 이용한 우연 조작(chance operations)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동전 던지기 등의 절차를 통해 음과 리듬, 지속시간 등의 결정을 내림으로써 작곡가 자신의 미적 선호가 결과에 개입하는 것을 최소화하려 하였다. 따라서 케이지에게 중요한 것은 음악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곡가의 의지로부터 음악을 해방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차이는 결국 매우 선명해졌다.
불레즈: 개인적 취향을 제거하기 위해 더욱 엄격하게 조직한다.
케이지: 개인적 취향을 제거하기 위해 선택권 자체를 우연에 넘긴다.
즉 출발점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지만 결론은 서로 반대였다.
5. ‘우연’을 둘러싼 결별
1951~52년을 전후하여 이러한 차이는 점차 명확해졌다. 케이지가 절대적인 우연을 작곡 과정에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불레즈는 이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불레즈가 우연 자체를 평생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일정한 선택 가능성을 연주자에게 제공하는 등 이른바 통제된 우연(controlled chance) 또는 가변적인 형식의 문제를 탐구하였다. 그러나 그에게 우연은 어디까지나 작곡가가 설정한 구조와 한계 안에서 작동해야 했다. 작곡가가 작품에 대한 책임을 우연의 절차 자체에 넘겨버리는 케이지의 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따라서 두 사람의 갈등은 단순한 작곡기법의 차이가 아니었다. ‘작곡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철학적 차이였다.
불레즈에게 작곡가는 관계를 발명하고 조직하는 존재였다. 반면 케이지는 점차 작곡가의 의도가 음악을 지배해야 한다는 전제 자체를 의심하였다. 케이지에게 중요한 것은 작곡가가 원하는 결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미리 의도하지 않았던 소리가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차이가 커지면서 두 사람의 서신 교환은 1952년 이후 점차 줄어들었고, 1954년 무렵에는 초기의 집중적인 지적 교류가 사실상 끝나게 되었다.
6. 케이지에서 슈토크하우젠으로
두 사람의 관계 변화는 불레즈가 전후 유럽 아방가르드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과정과도 연결된다. 1940년대 중반 불레즈에게 세르주 니그가 중요한 동료였다면, 1949년부터 1950년대 초까지는 케이지가 매우 중요한 국제적 대화 상대였다.
그러나 케이지와의 미학적 거리가 커지는 동안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이 불레즈에게 새로운 지적 동료로 부상하였다. 불레즈와 슈토크하우젠은 전자음악, 음렬주의, 음악적 시간과 형식의 조직 등 당시 유럽 아방가르드가 직면하고 있던 문제를 공유하고 있었다. 1954년 불레즈가 케이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슈토크하우젠을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젊은 작곡가 가운데 하나이자 현재의 음악적 문제를 실제로 논의할 수 있는 상대라고 평가한 것은 이러한 관계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Nigg → Cage → Stockhausen이라는 관계의 변화는 불레즈의 개인적인 인간관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메시앙의 젊은 제자였던 불레즈가 파리의 전후 음악계를 넘어 국제적인 아방가르드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과정과 상당 부분 겹친다.
결론
불레즈와 케이지는 처음부터 서로 대립했던 작곡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1940년대 말에는 기존의 음악적 관습을 파괴하고 새로운 작곡 원리를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던 가까운 지적 동료였다. 두 사람 모두 작곡가의 습관과 취향이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을 제한한다고 보았으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하였다.
그러나 바로 그 공통된 문제에서 서로 반대되는 미학이 탄생하였다. 불레즈는 작곡가의 자의성을 제거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조직과 통제를 선택하였고, 케이지는 같은 자의성을 제거하기 위해 작곡가의 선택과 통제 자체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따라서 이들의 결별은 개인적인 불화라기보다 전후 아방가르드 내부에서 발생한 근본적인 미학적 분화로 이해할 수 있다. 한쪽에는 구조, 조직, 통제를 극단까지 밀어붙인 불레즈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우연, 비의도성, 비결정성을 받아들인 케이지가 있었다.
결국 불레즈와 케이지의 초기 우정이 흥미로운 이유는 두 사람이 서로 달랐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거의 동일한 질문을 던졌기 때문에, 이후 그들이 얼마나 멀리 갈라졌는지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