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26
그렇게 그 작은 아이가 태어났다. 곱슬 머리카락의 해맑은 눈동자를 한 예쁜 아이였다.
그 아이가 태어나던 해에 동네에 큰 홍수가 있었다고 했다. 이웃들은 새 생명의 탄생을 함께 축하할 새가 없었다. 무자비한 물길이 휩쓸고간 동네는 여전히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채 슬픔에 잠겨 있었다. 꾸덕한 진흙탕이 되어버린 방바닥에서 또 물이 닿았던 곳이 가느다란 선을 남긴채 말라버린 벽지에서 그들은 하루하루를 겨우 보냈다. 다시 시작할 수는 없었다. 그림을 망쳤다고 해서 기존의 그림을 갖다버리고 새하얀 도화지를 다시 꺼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는 그렇게 조금씩 커나갔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세상 속에서, 손톱 밑에 검은 때가 긴 어른들의 투박한 손길 속에서.
아이는 세상이 마냥 신기했다. 특히 매일매일 달라지는 달을 보면서 신기해 했다. 하지만 그게 왜 그렇게 다른 모양을 갖는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아이의 호기심은 언제나 어른들의 지식을 넘어서고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아이의 부모는 머나먼 땅에 있는 친척의 집에 아이를 보내게 된다. 아이의 고모는 외국인과 결혼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대학 동기였고, 결혼 후에 두 아이를 낳았다. 검은 머리칼의 파란 눈동자를 가진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먼 한국에서 날아온 이 아이를 무척 신기해했다. 김을 먹는 아이를 보면서 검은 종이를 먹는다며 신기해 했다. 파란 눈의 아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면 농축된 주스에 물을 타고, 빵에 잼을 발라먹었다.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이었지만 그들은 너무 달랐다.
여행이라곤 가족들과 바닷가에 가본게 전부였던 아이는 외국살이가 무척 신기했다. 어느 여름날 사촌들과 함께 성당을 찾았다. 큰 광장이 있는, 오래된 역사의 성당이라고 했다. 날이 엄청 더운 날이었다. 아이는 더위에 익숙하지 않았다. 뙤약볕에서 줄을 선 고모는 전망대의 티켓을 끊어온다고 했다. 아이는 사촌들과 함께 그늘 아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인생이라 부를 수 있는 세상경험이 아직 많지 않은 아이였지만, 이 아이에게 단 것, 디저트는 인생의 낙이었다. 아이는 평생 달콤한 것을 좋아하게 된다. 그늘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건물의 열기에 숨이 막히는 오후였다. 해는 정수리 위에서 열을 뿜어내고 방금전 입에 물고있었던 아이스크림의 차가움은 금새 사라져버렸다. 그들은 계단을 올라가 몇몇 관광객들이 모여있는 입구에 함께 섰다. 성당 안은 어두웠다.
아이는 그때까지 알지 못했다. 바로 이곳에서 평생을 따라다닌, 그 목소리를 듣게 될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