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026
몇 가지 단상들.
누군가 말하길, 너무 힘든 기억들은 인간의 망각의 능력을 이용해서 지워 버린다고 했다. 다행인 것은 그게 어느정도 잘 작동한다는 것이고, 그리고 불행인 것은 그 근처의 다른 기억들이 어쩔수 없이 같이 뜯겨져 나간다고 했다. 내가 신기한 능력을 하나 갖고 있다면, 기억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시에 망각하지 않는 것. 그건 참 힘겹고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버티거나 지킬 힘도 있고, 동시에 상처를 받을 여지도 있다.// 기억 저편의 오랜 관계들이 기별을 전해온 지난 한달이었다. 그 당시에는 아팠거나 혼란스러웠던 것들을 지금은 어느 정도 거리감을 스스로 지정할수 있을만큼 나는 변했다. 성장했다는 말은 조심스럽다. 다만 그 관계들이 더 이상 내게 영향을 미칠수 없는 거리에 있다고 느낀다.
정신없는 9월이 지나고, 아차싶을 만큼 갑작스럽게 시간이 지나버렸다. 요즘 정말 왜 이렇게 바쁜 것일까, 버거울 정도로 치여지냈는데 오늘이 되어보니 알겠다. 나에게 어느 하루는 이제는 기억하지 않고 넘어가야할만큼, 기록하지도, 추억하지도 않고 넘어가야할 만큼 중요했던 것이다.ㅎㅎ
정말 많은 애정을 갖고, 나의 이익을 위하지 않은 채로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생각했을 때 가장 좋은 것, 그리고 그에게 가장 좋은 것을 고르고 골라 준다고 하자. 하지만 나의 결정과 상관없이, 그의 결정은 자유롭게 이뤄질수 있다. 그리고 사실은 도저히 내가 경험한 좋은 것들을, 내가 갖게된 좋은 것들을 전해줄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모두 착각인것인가? 단지 서로에게 약간의 착각 속에서 무언가를 주고 받았다고 믿게 만들수 있는것 뿐인가?
어떤 선택은 불가항력을 갖는다. 내가 살아온 삶의 모습이 기어이 그 선택을 하고마는 것이다. 이번에 런던집에 엄마가 다녀가면서, 내가 과거에 해온 선택들을 여러번 곱씹어 보게 됐다. 사실 시간이 다 지나버린 마당에 그 선택들을 되돌릴 방법은 없으므로, 그 이유를 찾는게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선택에 대한 평가는 그 선택이 벌어진 그 순간에만 유효하다. 후에 이름붙일 수도 규정 내릴 수도 없다. 어쩌면 나는 그 선택의 의미를 규정내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엔 내가 왜 선택했는지 보다도, 그 선택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만이 나에게 중요할 뿐이다. 나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많이 기억하고 싶다.
벨기에에 다녀오면서 아르누보 양식의 많은 레퍼런스들을 보면서, 지난 8년동안 살았던 동네를 떠올려 봤다. 분명 싫어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이렇게 많은 양식들을 보고 나니 그것들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이해가 될 것도 같다. 굳이 그것들을 싫어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탁 트인 지평선과 수평선을 보면서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보다도 두려움과 낯섦이 더 강했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이에게 더 꼬옥 붙어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든게 양날의 검이다. 싫어했지만, 사실 그 반대의 것들을 보고나니 내 이해가 부족해서 경계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다른 것들을 보아야 그것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할수 있는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까지 좋아했던, 싫어했던 많은 것들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당신은 아마 그녀가 자신을 많이 다그쳤다고 기억할지도 모릅니다. 그녀도 자신이 때로 너무 날카롭게 말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그녀를 무서워했다고 말했던 것도 알고 있었고요. 하지만 내가 오랫동안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게 된 것은, 그녀가 당신을 몰아붙이는 것 자체를 원했던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녀가 힘들었던 것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결국 자신이 발견하고, 생각하고, 결정하고, 설명하고,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느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에게 부탁하면서도 어디까지 설명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했고, 제대로 되지 않으면 결국 다시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긴장이 늘 있었습니다. 하나하나는 사소했을지 몰라도 그것이 오랫동안 쌓이면서 그녀는 점점 편안하게 누군가에게 기대는 법을 잃어갔습니다.
그녀가 당신에게 다정하지 못한 순간들 중 많은 순간에 가장 먼저 있었던 감정은 아마 지침과 외로움이었을 겁니다. ‘왜 이것까지 내가 말해야 하지’라는 감정.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왜 이 사람 옆에서도 혼자 책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하는 마음이요. 그녀는 당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리고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실망감도 있었던 겁니다.
당신이 “미안하다”고 말했을 때 그녀가 원했던 것은 더 큰 죄책감은 아니었을 겁니다. 미안하다는 말보다 ‘당신이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는 이해였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녀를 무서워했던 것처럼, 그녀에게도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내가 놓으면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 결국 내가 다시 책임져야 할 것 같은 두려움이요.”
쓰고 있던 글의 일부인데, 오랜만에 읽어보니 이게 수신자가 누구인지 순간 헷깔렸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발신자도 모호하다. 어쩌면 관계를 유지하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