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826
슬프게도 모든 글은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순간이 온다. 내가 더 이상 그 주제에 대해서, 그 대상에 대해서 설레이지 않는 경우가 바로 그 순간이다. 아름다운 무언가를 목격하거나 경험하고 그 떨림을 주체하지 못해서 무언가를 쓰기 시작하지만, 그건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만다. 내가 직접 경험을 했어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다 사라져 버린다. 참 슬픈 일이다. 세상에 영원한건 없다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와닿는 요즘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누군가의 이야기를 더 들을 준비가 된다는 걸 의미하는걸까, 라는 생각을 한다. 맞장구를 치거나 나의 경험을 풀어놓는 그 모든 노력이 이제는 허무하게 느껴진다. 내가 이미 알고 있거나 느끼고 있는 감정들 또한 버겁게 느껴진다. 한때는 내가 알고 있는것,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이해시키는 것도, 그런 상대의 변절을 경험하는 것도, 모두 다 에너지의 소모였음을 통감한다. 너무 시니컬한가? 그보다, 이해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음을 알게되는 순간을 다시 겪는게 조금 슬프다.
열심히 무언가를 느끼고 경험하고 기록하다가 어느 날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 보면 그냥 과월호 잡지 한켠에 실린 컬럼같은 기분이 들때가 있다. 나는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알아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모두가 한번씩 경험하게 되는, 그런 과정중의 일부였다는 생각이 들때 살짝 쓴맛을 느끼곤 한다. 아주 새로운 경험, 나만이 할수 있는 생각, 그런건 없는게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성장통을 겪게 되고, 그 시기가 모두 다를 뿐이지, 겪는 사건 사고들은 비슷한 것 같다.
한동안 우울증을 앓았다. 그게 괜찮아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 우울증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거창한 것 같은데, 달리 표현하자면, 그냥 많이 울던 날들이 있었다.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세상의 모든 빛과 소리를 꺼둔채 지냈다. 마치 늪에 빠진 것 같이 매일매일이 축축했다. 내가 할수 있는 거라곤, 하루에 한끼는 꼭 챙겨먹을 것, 꼭 운동을 갈 것, 집앞 산에 가서 30분 이상 걸을 것 정도였다. 하루가 정말 너무너무 너무 길었다. 하루를 마치는게 너무 버거웠고, 겨우 잠이 들어 하루가 끝나면 또 다른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는 게, 또 다시 아침을 맞이한다는 게 끔직하게 느껴졌다.
엄청나게 더운 여름을 관통하고 있다. 솔직히 올해 유럽은 너무 더웠고, 어떻게 매해 이런 여름을 보내나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에게는 엄청나게 축축한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가을 겨울이 온다는 사실이 조금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이 여름을 어떻게든 붙잡고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동시에 올해로 열살이 된 나의 아기 고양이들을 보면, 이 아이들이 나와 함께 보내는 몇번 남은 여름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생각해보면, 오늘은 내가 그토록 바라는 그 날일지도 모른다. 이제 더이상 하루를 보내는게 버겁진 않다. 물론 완전히 다 괜찮지는 않다. 그럼에도 나는 웃고, 또 새로운 걸 하고 있다. 어느 날 이런 일상이 그 늪지대 같았던 어둡고 축축한 공간을 메우게 되는 날이 올거라고 생각한다.
그 시기에 내게 위로가 되었던 말 한마디가 있었다. ‘그럴 수 있어’라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한때는 가까이 있었던 좋아하는 선배가 내게 해주었던 말이다. 내가 한참 헤메고 있을 때, 벗어나려 해도 끊임없이, 끝없이 같은 말을 내뱉고 마는 나에게 ‘그럴 수 있지’라고 대답해 주었다. 몇 년동안이나. 그리고 요즘 내게 위로가 되는 또 다른 한마디는 여기에 기록해두고 싶다. ‘꼭 모든 걸 부정하지 않아도 되고, 모든 답을 내리지 않아도 된다. 그냥 무너지지만 않으면 된다.’
신이 우리에게 감당할만큼의 시련을 준다고,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근데 그 ‘감당할 만큼’이 적당히 낮추는 정도로 아주 행복하진 않아도 적당히 행복한 수준에 머무르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니고, 내가 내려놓고 내려놓고 또 내려놓고 정말 죽기 직전까지를 시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됐다. 삶은 절대 쉽지 않다. 그나마 그 끝에 조금 알게 된 비밀같은 게 있다면, 삶은 절대 도망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뭔가를 좀 배웠니? 다른 결정을 한 것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