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abbit 02
좁고 긴 회랑을 따라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다. 기둥은 짙은 초록과 흰색 대리석이 층층이 쌓인 줄무늬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이집트 신전에 들어선 것처럼 낯설고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빛은 공간 전체에 고르게 퍼지지 않았다. 몇몇 곳만 조용히 비출 뿐 조명이 닿지 않는 곳은 깊은 어둠 속에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반면 주황빛 조명이 닿는 부분은 금박 위에 떨어진 빛처럼 따뜻하면서도 눈부시게 번졌다.
천장에는 밤하늘을 수놓은 듯한 푸른 바탕 위로 별들이 촘촘히 그려져 있었다. 눈이 시릴 것 같은 청파랑이었다. 그리고 기둥들 위로 펼쳐진 하늘은 마치 건물 밖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천장을 가득 메운 별들에서 시선을 돌리면, 바닥에는 마치 중요한 비밀을 담은 듯한 모자이크 문양이 연이어 펼쳐져 있었다. 반복적으로 축소되는 사각형, 원을 품은 사각형, 벌집을 연상시키는 육각형 등 서로 닮았으면서도 반복되지 않는 다양한 패턴들이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마침 아이가 찾은 시기는 덮개 아래 숨겨둔 이 모자이크 바닥을 오픈하는 시기였다. 성당을 찾은 사람들은 그 신비로운 광경에 사로잡혀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아이는 그때까지 보아 온 세상과 너무도 다른 풍경 앞에서 경외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어느 순간 가족들과 떨어진 아이는 홀로 계단을 따라 한 층씩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층마다 그림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무틀에 못 박힌 벌거벗은 남자의 허리를 창으로 찌르는 사람, 돌무더기 위에서 어린아이를 해치려 칼을 들어 올린 노인, 나무 문틀 너머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여인과 그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누더기 차림의 남자와 또 다른 여인. 그림 속에서는 하나같이 누군가가 희생되고 있었고, 누군가는 죽어 가고 있었다. 공간 전체가 두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찬 듯했다. 아이는 숨이 막히는 그 층들을 도망치듯 지나쳐 계속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 층이다. 그곳은 지금까지 지나온 공간과 전혀 달랐다. 아래층이 빛 하나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조명만 희번뜩이며 빛나고 있었다면, 이곳에는 탁 트인 창과 그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밝은 햇빛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빛에 아이는 순간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눈이 서서히 밝음에 익숙해지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붉은 옷들이었다. 고귀하고 귀한 사람의 몸을 감싸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옷들. 아마도 아주 오래전, 누군가가 실제로 입었던 옷들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