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option of Twelve-Tone Technique and the Formation of His Critique of Schoenberg
불레즈의 12음기법 수용과 쇤베르크 비판의 형성
《12개의 노타시옹》은 1945년, 불레즈가 약 20세 때 작곡한 초기작이다. 이 책의 인터뷰에서도 불레즈가 직접 “스무 살이었고, 1945년에 작곡했다”고 말하고 있다. IRCAM 자료 역시 이 작품을 1945년 작품으로 제시한다. 반면 〈쇤베르크는 죽었다〉(Schoenberg est mort)는 쇤베르크가 1951년 7월 사망한 뒤 쓰인 글로, 일반적으로 1952년 발표된 글로 분류된다. Cambridge 자료에서도 〈Schoenberg est mort〉를 1952년으로 명시한다.
따라서 시간 순서는 《12개의 노타시옹》(1945) → 약 6~7년 뒤 〈쇤베르크는 죽었다〉(1951~52)이다.
이 순서가 중요한데, 《노타시옹》은 불레즈가 아직 레이보비츠에게서 베베른과 12음기법을 배우던 초기 단계의 작품이다. 번역하고 있는 본문에서도 정확히 “레이보비츠에게서 받은 베베른 음악에 관한 가르침의 첫 결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동시에 불레즈 본인은 훗날 인터뷰에서 이 작품이 레이보비츠의 교조주의(dogmatism)를 조롱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회고한다.
불레즈는 1945년 《노타시옹》에서 이미 정통 12음기법을 배우면서도 그 규칙의 경직성을 비트는 태도가 나타났고, 이것이 이후 1952년 〈쇤베르크는 죽었다〉에서 훨씬 명시적인 미학적 비판으로 발전했다고 볼수 있다. 특히 불레즈가 〈쇤베르크는 죽었다〉에서 비판한 핵심은 12음기법 자체를 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쇤베르크가 새로운 음고 조직법을 만들고도 소나타·변주곡 같은 기존 형식과 전통적 음악 언어에 여전히 의존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노타시옹》의 “12곡 × 각 12마디”라는 구조와 연결해서 보면, 불레즈의 초기 미학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볼수 있다.
《피아노를 위한 12개의 노타시옹》(1945)을 쇤베르크와 비교하려면 먼저 이 작품에서 말하는 ‘주요 멜로디’가 무엇인지를 이해해야야 한다.
이 작품은 조성음악처럼 ‘주제 선율 하나가 있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방식이 아니다. 핵심 재료는 하나의 12음 음렬(twelve-tone row)이다. 12곡 전체가 같은 음렬을 공유하고, 그 음렬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펼쳐 각각의 미니어처를 만든다. 각 곡은 정확히 12마디이다. 즉 12음 × 12곡 × 각 12마디라는 매우 의식적인 숫자 구조가 기본 틀이다. 불레즈 자신이 훗날 이것을 레이보비츠의 12음기법적 교조주의를 조롱하려는 의도였다고 설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Notation I을 보면 음렬이 비교적 명확하다. Jonathan Goldman의 분석에 따르면 첫 3마디에서 음렬은 다음 순서로 선율적으로 제시된다.
A♭ – B♭ – E♭ – D – A – E – C – F – C♯ – G – F♯ – B
라♭ – 시♭ – 미♭ – 레 – 라 – 미 – 도 – 파 – 도♯ – 솔 – 파♯ – 시
이것이 이 작품 전체의 기본적인 원음렬이다. 다만 이것을 전통적인 의미의 주제 선율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작품의 음고를 생성하는 기본 음렬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Notation I에서는 처음에 이 음렬이 선적으로 펼쳐지다가, 후반부 특히 9마디 이후에는 두 성부로 나뉘어 수직적·화성적으로 배치된다. 즉 같은 12음 재료가 선율 → 화음/텍스처로 변환된다.
각 12곡은 앞 곡에 이어 음렬의 다음 음을 출발점으로 삼는 순환 구조를 보여준다. 그런데 불레즈는 음렬만 기계적으로 나열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Notation IV에서는 12음 음렬을 사실상 두 개의 6음군으로 다루면서, 왼손에서는 한 6음 패턴을 고정적으로 반복하고 오른손에서는 다른 6음군을 점진적이고 순환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Goldman은 이를 한쪽의 ‘선형적(linear)’ 전개와 다른 쪽의 ‘순환적(cyclical)’ 전개라는 대립으로 분석한다. 리듬 역시 대칭·역행 등의 구조를 가진다.
여기서 쇤베르크와 비교하면 아주 좋은 논점이 생긴다. 쇤베르크의 12음 작품도 하나의 12음렬을 기본 재료로 삼고 원형(P), 전위(I), 역행(R), 역행전위(RI) 및 이조형을 사용한다. 하지만 쇤베르크는 이 새로운 음고 조직법을 사용하면서도 흔히 전통적인 음악 형식과 동기 발전의 사고방식을 유지한다. 예를 들어 《피아노 모음곡 Op. 25》은 Prelude, Gavotte, Musette, Intermezzo, Menuett, Gigue라는 바로크적 모음곡 형식을 사용한다. 음은 12음기법으로 조직되지만, 형식적 사고에는 전통과 강한 연속성이 있다.
반면 20세의 불레즈가 《12개의 노타시옹》에서 한 것은 조금 다르다. 그는 쇤베르크에게서 출발한 12음기법을 받아들이면서도 ‘12음렬을 어떻게 전통적 주제처럼 발전시킬 것인가’보다 ‘하나의 음렬에서 서로 극단적으로 다른 음악적 성격과 질감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에 더 관심을 보인다. 동시에 메시앙에게서 배운 리듬과 선법적 화성의 영향도 남아 있다. 연구에서도 1944–46년 불레즈의 음악에 메시앙의 음고·리듬 조직 방식이 중요한 형성적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어쨌든 《노타시옹》은 ‘쇤베르크를 거부한 작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1945년 당시 불레즈는 오히려 쇤베르크의 음악에 강렬하게 매료되어 있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제2빈악파를 레이보비츠를 통해 접했고, 불레즈 자신도 쇤베르크의 《관악5중주》를 처음 접했을 때 일종의 ‘계시’처럼 느꼈으며 무엇보다 그 음악이 어떻게 구성 되었는지 알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초기 불레즈에게는 베베른뿐 아니라 쇤베르크의 영향도 상당히 중요했다는 최근 연구가 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은 흐름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1945년 《12개의 노타시옹》 = 쇤베르크의 12음기법을 막 흡수하면서 그것을 자기 방식으로 실험
1952년 〈쇤베르크는 죽었다〉 = 그 경험 이후 쇤베르크가 12음기법을 충분히 급진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다고 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