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Corbusier and the Architectural Promenade
Samuel, Flora. Le Corbusier and the Architectural Promenade. Basel: Birkhäuser, 2010.
<Le Corbusier applies the architectural promenade> p.115
“이 두 채의 집 중 두 번째는 일종의 건축적 산책과 같을 것이다. 당신은 들어서고, 건축적 장면이 연속적으로 펼쳐진다. 당신은 동선을 따라가며, 다양한 원근감이 전개된다. 우리는 빛이 벽을 비추거나 그림자를 만들며 흘러드는 방식으로 연출한다. 창문은 외부로의 시야를 열어주며, 그곳에서 건축적 통일감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
p.116
여기서 르 코르뷔지에의 의도를 이해하려면, 시테가 강조한 바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즉, “고대 및 중세 디자인의 매력에서 본질적인 요소는 외부가 동시에 내부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어, 보는 이가 동시에 집 안에 있으면서 거리 위에 있는 것 같은 감각을 가지게 한 것”이라는 점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을 향하여(Vers une Architecture)』에서 ‘평면의 환영’에 관한 장의 한 부분을 “외부는 항상 내부다(The Outside is Always an Inside)”에 대한 논의에 바쳤다.
<The Picturesque> p. 76
19세기 건축 사상은 ‘picturesque(그림 같은 것)’이라는 개념에 광범위한 중요성이 부여 되면서 혁신적으로 변화하였다. 고전 건축이 르네상스 이후 건축 설계에서 대칭성을 질서의 자연스러운 수단으로 간주 했듯이, picturesque는 18세기 새로운 조경 정원 디자인과 연관되어, 시골의 작은 코티지와 같은 소규모 건축물에도 주요한 미적 범주로 자리 잡았다. picturesque는 낭만주의 혁명과 함께 건축에서 하나의 미학적 범주로서 고전주의 디자인의 형식성을 대체하게 되었으며, 자연의 질서와 인간 이성의 지혜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였다.
19세기 디자이너들이 이해한 picturesque는 바로 이 이중 목적(형식성과 기능성)을 충족시켜주었다.
p. 77
존 클라우디우스 라우든(John Claudius Loudon)은 1806년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picturesque beauty(풍경적 아름다움)”라는 표현은 원래 그림으로 그렸을 때 좋은 효과를 주는 특정 대상이나 장면에 사용되었으며, 지금은 훨씬 더 광범위하게 사용되며, 그 특징은 거칠고, 갑작스럽고, 불규칙함으로, 이것은 윤곽, 형태, 배치, 색채 등에서 나타난다.
Burgh에게 있어서 variety는 비대칭 디자인을 의미했다. variety를 구성하는 불규칙한 배열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John Claudius Loudon은 ‘조화’라는 단어를 보통처럼 대칭성에 중점을 두어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picturesque의 실현으로 정의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라우든은 “조화(harmony)란,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매스들을 도입하고, 그것들을 서로 다른 거리에서 배치함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Burgh에게 있어서 path는 구불구불한 길과 불규칙한 지형을 따라 조경 정원을 걸어갈 때 마주치게 되는 비대칭적인 ‘그림들’ 또는 시야들의 연속을 의미했다. Burgh는 산책자가 전체 풍경과 맺는 관계를 계속해서 새롭게 정의하게 만드는 변화하는 전경 장면들의 연속성을 강조했으며, 이 전경은 또한 중경과 배경 요소들도 포함했다. 물론, 산책 중에 마주치게 되는 연속적인 ‘그림들’은 이 절의 첫 문단에서 나열된 화가들의 방식에 따라 구성된 비대칭적인 조경 장면들이었다.
p. 78
이런 생각을 설명하기 위해, Stewart는 라이프니츠의 철학적 개념인 ‘충분한 이유(sufficient reason)’를 미학의 영역에 적용했다. Stewart의 충분한 이유에 대한 정의는 picturesque 원칙의 방향축을 전환시켰고, Burgh의 개념처럼 특정한 미적 특성보다는 일반적인 미적 원칙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시켰다.
핵심 문제는 아름답고 picturesque한 사물이나 장면의 구체적인 특성이 아니라, 그것들이 얼마나 합리적으로 보이는가였다. ‘충분한 이유’는 시각적인 즐거움이 임의적이기보다는 일정 부분에서 감성과 이성을 충족시키는 데 달려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아름답고 picturesque한 사물이나 장면의 구체적인 특성이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합리적으로 보이느냐였다. ‘충분한 이유’는 시각적 특성이 임의적이기보다는 합리적으로 보일 것을 요구했다. 미적 즐거움은 마음과 이성의 이러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크게 좌우되었다.
스튜어트는 먼저 실용적 목적이 없는 사물들을 고려하면서, ‘정형의 형태’와 ‘균일한 배열’이 불규칙한 것보다 더 만족스럽다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후자의 경우, “예술가가 왜 그 특정한 형태를 선택했는지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정황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합성과 실용성’이 작용하기 시작하면, 이 모든 것은 달라진다. 그때부터는 ‘규칙성과 균일성’도 그것이 실용적 목적을 방해하지 않는 한에서만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진다. 스튜어트는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조경과 건축 디자인에서 예시를 제시했다.
"하지만 평평하고 탁 트인 들판 위에서 길이 무의미하게 구불거리는 것은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이런 경우, 나는 그러한 불쾌한 효과를 위에서 언급한 ‘충분한 이유’의 원칙으로 돌리고 싶다."
"하나의 집이, 다른 건물들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완벽히 수평적인 기초 위에 서 있고, 현관문이 정중앙에 있지 않으면 우리는 불쾌하게 느낀다"
"이러한 불쾌함은, 어느 정도는, 인접한 다른 집들과의 관계가 사라지고, 실용적인 목적이 존재하지 않거나, 또는 작가의 머릿속에 있었던 어떤 합리적 동기가 상상조차 되지 않는 순간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불규칙하게 성곽 모양으로 지어진 집이 막다른 곳에 놓여 있다면, 그것은 디자이너의 변덕이나 허영심이라는 생각…"
p. 79
‘충분한 이유’의 원칙을 설명하면서, 스튜어트는 합리성이라는 개념을 미적 즐거움과 단단히 연결 지었는데, 이는 picturesque한 설계 안에서 상식이나 적합성이 발견될 수 있을 때 그러했다. 그는 더 나아가, 자연 속의 불규칙성은 신성함의 징표로서 기대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한 발언들은, 분명히 알 수 있듯, 오로지 인간의 작품에만 적용된다. 자연의 작품에서는, 그것들이 도처에 전능한 힘과 헤아릴 수 없는 설계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만큼, 우리는 인간과 같은 능력을 지니고 동일한 동기로 행동하는 존재들의 산물에서 기대되는 명백한 계획의 일관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Augustus Welby Pugin은 “현대 디자인의 무의미한 균일성”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모든 것이 양쪽이 완전히 똑같아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 조상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비현실적인 건축 양식을 만들어냈다… 일단 이러한 규칙성 체계의 족쇄와 속박에서 벗어나고, 사람들이 현관과 양쪽 날개가 대칭인 건물이 최고의 디자인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면, 우리는 엄청난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